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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인터뷰] ① "마시는 골동품입니다"…0.6평 찻집에서 세계 최대 노차(老茶) 컬렉션까지, 끽다거 34년의 기록

작성자 코인뉴스 · 2026. 6. 23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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두 사람을 마주하고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묘한 균형'이었다. 한 사람은 대만에서 태어나 부모의 찻상 곁에서 자랐고, 미술을 공부하러 독일까지 갔다가 "너의 정신과 사상을 키워라"는 교수의 말에 차(茶)의 길로 돌아온 사람이다. 다른 한 사람은 스스로를 "철저하게 돈으로 본다"고 말하는 IT 사업가 출신으로, 보이차를 마시는 골동품'이라 정의한다. 안성희 끽다거 대표와 손성훈 케이디지티(KDGT) 대표. 부부이자 사업 파트너인 두 사람은 인터뷰 내내 서로의 문장을 이어받으며 전혀 다른 두 개의 렌즈로 같은 자산을 설명했다. 한쪽은 문화와 역사로, 다른 한쪽은 희소성과 수익률로. 끽다거(喫茶去)는 1992년 국내 최초로 보이차를 정식 수입한 보이차 유통 1세대 기업이다. 그리고 이 34년 차 기업이 보유한 1989년산 하관청소타 보이차를 연간 10조원 이상의 거래량을 보유한 글로벌 자산 기반 투자를 다루는 스위치원(SwitchWon)에서 보이차 RWA 기반 디지털상품권을 런칭한다. 전통 차 문화의 적자(嫡子)와 블록체인이 만나기까지, 이 가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. 이야기는 반세기 전 대만에서 공부하던 유학생으로부터 시작된다. ■ "오래된 보이차는 오히려 중국에 없다" 보이차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부터 짚고 가자. 오래된 보이차일수록 중국 본토에 많을 것'이라는 통념이다. 현실은 정반대다. "중국이 1950년대 공산화되면서 돈이 되는 것들을 수출었어요. 보이차도 그 과정에서 홍콩과 대만, 일본, 동남아시아로 빠져나갔습니다." 안 대표의 설명이다. 안성희 끽다거 대표가 서울 토큰포스트 본사에서 가문 3대로 이어진 보이차 사업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. (사진=토큰포스트) 당시 홍콩에서 보이차를 대량으로 사들인 건 뜻밖에도 대형 음식점들이었다. 우롱차나 녹차는 찻잎을 매번 갈아줘야 하지만, 보이차는 찻잎을 조금씩 더해도 맛이 크게 변하지 않아 인건비가 절약됐기 때문이다. 음식점들은 보이차를 창고에 쟁여놓고 썼고, 십수 년 뒤 사업을 정리하면서 창고는 통째로 창고지기들에게 넘어갔다. 창고지기들이 나이가 들어 유산을 정리하려고 보니, 정체 모를 검은 떡 같은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. 이들이 찻집을 찾아가 물어보면서 잠자던 노차(老茶)들이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. 그 찻집 인맥의 한가운데에 안 대표의 부친이 있었다. 부친은 대만에서 12년간 유학하며 찻집 주인들과 인연을 쌓았고, 태극권을 배우러 갔다가 만난 사범대학 교수에게서 보이차를 사사했다. 그 교수가 바로 훗날 보이차 1대 종사(宗師)'로 꼽히는 대만의 등시해 교수다. 등 교수가 1990년대에 펴낸 보이차 도감은 지금까지도 시장의 족보 역할을 한다. 191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어떤 차들이 만들어졌는지를 정리한 이 기록에 실리지 않은 차는, 진품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는 기준이 그 책 한 권으로 세워졌다. ■ 0.6평 무료 시음에서 시작된 끽다거…"몰라서 못 마시는 것뿐" 1992년 유학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한 부부에게는 하나의 염원이 있었다. 신라시대부터 차를 마시던 민족이 일제강점기와 전란을 거치며 차 문화를 잃었다는 것. "안 마셔봤기 때문에 모르는 것뿐"이라는 믿음으로, 서울 견지동 조계사 인근 0.6평짜리 공간에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무료 시음을 시작했다. 주인이 앉고 손님이 앉으면 꽉 차는 공간이었다. 대만에서 커피숍들이 무료 시음 찻집으로 바뀌며 차 문화가 부흥하는 과정을 눈으로 본 경험이 바탕이 됐다. 상호 끽다거(喫茶去)'는 "차 한잔 드시고 가세요"라는 뜻으로, 중국 당나라 조주선사의 선어(禪語)에서 따왔다. 끽(喫) 자는 단순히 먹는다'가 아니라 음미하고 향유한다는 뜻을 품은 글자다. 네이버 지식백과에 끽다거'를 검색하면 조주선사와 이 매장, 두 개가 나란히 나온다. 대만에서 태어나 9살에 한국에 온 안 대표는 부모의 사업을 보며 자랐고, 중·고등학교 때부터 "이건 무조건 내가 할 거니까 다른 사람 주면 안 된다"고 선언했다고 한다. 미술 유학을 접고 돌아와 매장에서 일하며 성균관대 동양철학 대학원에 진학했고, 일본 다도까지 1년간 배웠다. "동양 3국의 차 문화를 모두 알아야 한다"는 생각에서였다. ■ 혼인신고 후에야 열린 창고…세무법인과 함께한 전수조사, 119종 12만 편